성보 문화재

도선사 마애불입상 (시도유형문화재 제34호)

도선사의 대표적인 유물로 손꼽히는 <마애불입상>은 대웅전 뒤편 석불전 영역에 있는데, 높이 20m 정도의 커다란 바위 면에 얕게 돋을새김한 여래상으로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34호로 지정되어 있다.

석벽(石壁) 상단에 보개(寶蓋)를 만들기 위해 암벽을 파내고 직사각형의 석재 일곱 개를 끼워 넣었고, 근래에는 <마애불입상> 주변으로 청동 보호각을 설치하였다. <마애불입상> 앞쪽으로는 예배를 드릴 수 있는 넓은 공간이 있고, 1887년에 세운 <칠층석탑>과 조선말기에 건립한 것으로 추정되는 <석등>이 자리하고 있다.

<마애불입상>은 소발(素髮)의 머리 위에 낮은 육계(肉髻)가 솟아 있다. 머리 중앙에는 부채꼴의 중앙계주가 새겨져 있고, 각진 얼굴에 가늘게 뜬 눈을 음각으로 처리하여 눈두덩과 눈 밑 살이 두툼해 보인다. 코는 넓은 콧등과 둥근 콧볼 및 반달 모양의 콧구멍을 표현하였으며, 인중이 짧고 입은 작아 전체적으로 평면적인 느낌이다. 작은 입주변으로는 수염을 새겼다. 사적기 등에 언급된 것처럼 도선국사에 의해 조성된 상으로 보기에는 양식적인 면에서 다소 차이가 있어 신라시대 조성설은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양식적인 특징으로 미루어 보아 고려시대에 유행했던 마애불입상 양식을 이어받아 조선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일제강점기에 촬영된 사진과 현재의 모습을 비교해 보면, 청동으로 제작한 보호각과 공양물을 올려놓을 수 있는 구조물은 근래에 새롭게 만든 것임을 알 수 있다. 머리 위쪽에 보개 역할을 하는 석재 일부는 근래에 보수한 것이다. <마애불입상>앞쪽으로는 공양단이 설치되어 있다.

도선사 목 아미타불·대세지보살상(시도유형문화재 제191호)

호국참회원 내부에 설치된 불단에는 아미타불, 관음보살, 대세지보살로 구성된 삼존불이 봉안되어 있다.

이 중 근래에 새롭게 조성된 <관음보살상>을 제외한 <아미타불좌상>과 <대세지보살좌상>은 조선후기에 조성된 작품으로 원문(願文)을 통해 조성연대 및 봉안처 등이 확인되어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91호로 지정되어 있다. 원문에 의하면 2구의 상은 1740년에 도봉산 원통암(圓通菴)에서 조성했고, 삼각산 진관암(津寬菴)에 봉안했음을 알 수 있다. 이후에 언제 어떤 연유로 도선사로 옮겨졌는지는 알 수 없다.

1933년에 작성된 사찰재산대장을 살펴보면, <아미타불>과 <약사불>, <관음보살> 등의 항목이 확인되는데, 동일한 유물인지는 확인할 수 없다. 특히 <아미타불>의 경우는 재산대장목록에는 석제 도금으로 기술되어 있으며, <관음보살> 또한 형태가 입상이라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1930년대 당시에 현재의 <아미타삼존상>이 도선사에 봉안되었는지의 여부는 확정 지을 수 없다. 1960년대 촬영된 사진에서는 좌협시로 <관음보살좌상>이 함께 등장하는데, 이 상은 현재 청담기념관 수장고에 별도로 보관 중이다. 양식이나 상의 크기로 보아 함께 제작된 상은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호국참회원에 봉안되어 있는 삼존불상 중 <관음보살좌상>은 근래에 새롭게 제작된 것으로, 원래 함께 봉안하던 <관음보살좌상>의 보관 일부가 파손되면서 대체한 것으로 전한다.

도선사 석 독성상(시도유형문화재 제192호)

<독성상>은 삼성각에 봉안된 석조 독성상으로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92호 지정되어 있다.
<독성상>은 불교의 많은 나한 가운데 남인도의 천태산(天台山)에 살면서 부처가 된다는 석가불의 예언(受記)을 받고 열심히 수행하고 있는 나반존자(那畔尊者)를 형상화한 것이다.

이 상은 본래 석불전(石佛殿) 내에 독성각에 봉안되어 있었으나 현재의 자리로 건물을 이건하면서 전각의 명칭 역시 삼성각(三聖閣)으로 바뀌었다.

오른손은 바닥을 짚고 왼손은 왼쪽다리를 세운 무릎 위에 올려놓고 있는 자세를 하고 있다. 머리는 삭발했으며 얼굴은 갸름하며 양감이 있고, 코는 비교적 큼직하지만 입이 작고 눈은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붉은 가사(袈裟)를 묶은 고리매듭이 왼쪽 어깨에 있다.

독성상은 1992년에 새롭게 개채(改彩)가 이루어졌는데 이때 1876년(고종 13)에 개분(改紛)한 사실을 기록한
「독성나반존자개분봉안축원문」이 출토되었다.
<독성상>의 제작연대는 18세기로 추정된다. 16나한상의 모습과 매우 비슷해서 16나한상의 중의 한 분으로 조성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이처럼 <독성상>은 조선후기에 그 예가 희귀한 석조 독성상이라는 점에서 조선 후기 독성신앙과 조각연구에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도선사 청동 종 및 일괄 유물(시도유형문화재 제259호)

1972년 청담대종사 사리탑 부지의 터를 파는 도중에 청동범종, 청동숟가락 5점, 청동젓가락 1짝,
청동국자 2점, 동경, 동전이 일괄 출토되었다.

청동범종은 음통이 있는 종뉴 아래에 이중 정부(頂部)를 한 종신이 연결된 소종(小鐘)이다. 종뉴는 여의주를 든 사조룡(四爪龍)이 음통을 감싸고 있으며, 그 끝에는 만개한 연화가 장식되어 있다. 종신에는 당초눔으로 된 상대와 하대가 있고 4개의 정사각형 유곽이 있으며, 구연부 위쪽에 2개의 국화문 당좌가 있다. 이 종은 고려후기 범종의 특징인 입상 화문대가 없으나 전체적인 제작 기법, 상대와 하대의 문양, 사각형 유곽 및 밀집된 종유 모양, 국화문 당좌등으로 보아 14세기 후반에 제작된 것 이다. 청동숟가락은 전형적인 고려시대 숟가락들로서 늘어진 S자 형태를 하고 있는데, 버들잎형 시면(匙面)에 제비꼬리형 손잡이가 연결되어 있다. 젓가락은 장식이 없고 단면이 사각형이다.

국자 중 큰 것은 약간 마모되었고, 작은 국자는 안으로 오므라든 원형 시면에 연봉이 달린 죽절문 손잡이가 연결된 형태인데, 조형미가 돋보인다. 이들 숟가락 및 국자는 13세기 후반에 제작된 것으로 한 세트였던 것 같다. 18세기 중엽에 일본 오사카에서 생산된 봉래문경은 왼쪽이 절실된 손잡이 거울로서 위 쪽에는 3개의 산이 있고 아래쪽에는 파도가 있으며, 중간에는 소나무 가지가 뻗어있고 우측에는 주경사(鑄鏡師)의 이름이 있다. 동전은 조선 숙종 4년(1678)에 주조되기 시작한 상평통보이다. 출토지가 분명한 이 일괄 유물들은 불교공예, 생활공예, 한일 교섭사 연구뿐만 아니라, 건물지가 고려시대~조선시대까지 지속되었음을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도선사 석조관음보살좌상(시도유형문화재 제396호)

도선사 석조관음보살좌상은 양 손을 무릎 위에 올리고 있는 선정인으로 중앙에 화불이 새겨진 보관을 착용하고 있으며, 법의는 양어깨를 다덮은 통견의 대의에 승각기와 편삼으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조선 후기 불상 착의법을 보여준다.

복장공에서 확인된 조성발원문과 중수발원문을 통해 조각승 승호가 조성한 작품임을 알 수 있으며, 원 봉안처의 추정도 가능하다.

즉 석조관음보살좌상을 조각한 조선 후기 대표 작가 승호의 공백기 시절 활약상을 알 수 있으며, 불상의 이운과정을 추정할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하고 있어 문화재적 가치가 매우 높은 불상이라 할 수 있다.​